전청조 "남현희도 2월에 내 정체 알아" 채널A 단독 인터뷰 공개

TV, 영화, 드라마|2023. 10. 30.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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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의 전 재혼 상대자 전청조가 직접 입을 열었습니다. 30일 채널 A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전청조는 기존 언론 보도와는 완전히 대치되는 주장을 펼쳐 남현희-전청조의 진실공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청조 "남현희도 2월에 내 정체 알아" 채널A 단독 인터뷰 공개


채널A 유튜브 캡쳐

30일 전청조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난 현재 법적으로 여자다. 성전환 수술을 안했고, 남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치는 중"이라며 "지금은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고 가슴 (제거)수술까지 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남현희가 처음엔 제가 파라다이스 혼외자인줄 알고 만났지만 올해 2월부터 제가 재벌이 아닌걸 알고 만났다"며 "기자 대행 아르바이트를 쓴 것도 남현희는 제 휴대폰을 보고 알고 있었다"고 말해 파문을 예고했습니다.

전청조는 "그 문자를 보고 '이게 뭐냐'고 남현희가 물어서 무슨 말을 해도 화낼 것 같다며 다 말해줬다. 그게 2월이었다"며 "남현희는 내가 재벌 3세가 아닌 것을 이미 알고 만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날 전청조는 "저는 할머니와 엄마와 자랐다. 제 기억으로는 7살때부터 아빠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며 "사기로 금전적 이득을 얻은게 있다. 총액? 계산을 어떻게 다 할지"라고 말을 흐렸습니다. 이어 "받은 투자금 대부분은 남현희에게 주었다"며 "남현희 대출금 갚아주고 차 사주고 딸 용돈, 어머님에 매달 용돈 드렸고 명품 사주고 카드값을 내줬다. 제가 따로 모아놨거나 그런 돈은 없다. 지금 제 재산으로 자동차 등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현희 권유로 성전환 수술" 주장

채널A 유튜브 캡쳐

또한 "남현희가 성전환 수술을 권유했다"며 "저 또한 남씨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수술을 하러 갔다. 남현희가 너 가슴이 나와서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것 같다고 해 가슴을 수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주민등록증도 단 한개뿐이다. 제 남동생거 하나 갖고 있다. 위조한 사실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청조는 "임신테스트기는 경호원이 산 것을 전달만 했다"며 "두줄이 나왔고 저도 임신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사랑하기에 누구 애든 낳아서 살 마음이었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진실이 드러난 이후 극단적 선택도 생각했다. 밥도 잘 못먹고 잠도 못자고 극단적인 선택도 했고 제가 저지른 일을 다 감당할 것이고 책임질 것이다. 피해자분들게 너무너무 죄송하다. 경찰 조사를 피할 생각도 없고 성실하게 조사를 받겠다. 죗값을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채널A 유튜브 캡

한편 남현희는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다 전청조가 하자고 해서 움직인 것들이 전부"라며 "현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악몽을 꾸는 거 같다.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벌 받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어 "전청조가 성전환 수술을 했고 임신가스라이팅을 했다"고 밝혔다가 추후 CBS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성기를 본 적은 없다. 고환 이식 수술을 했다고 해서 재벌이라 가능한가 생각했다. 본인이 6개월 시한부라며 세면대에 피를 토한 모습도 보여줬다"고 주장했습니다. 남현희는 자신이 명백한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남현희 역시 사기 공모 의혹으로 고발당했습니다. 결혼을 약속해 한 몸이던 두 사람이 초고속 결별 이후 정반대의 주장을 하면서 진실공방으로 치닫는 가운데 전청조의 사기 의혹이 어떤 결론을 맺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전청조가 남현희 조카 중학생 A군에게 준 2700만원짜리 시계 무엇?

 

전청조가 남현희 조카 중학생 A군에게 준 2700만원짜리 시계 무엇?

전청조가 남현희 조카 중학생 A군에게 준 2700만원짜리 시계 무엇? 남현희와 사기 결혼 행각을 벌인 전청조 씨가 남현희 씨의 중학생 조카 A군을 골패채로 여러 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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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청조가 남현희 조카 중학생 A군에게 준 2700만원짜리 시계 무엇?

TV, 영화, 드라마|2023. 10. 3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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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청조가 남현희 조카 중학생 A군에게 준 2700만원짜리 시계 무엇?


남현희와 사기 결혼 행각을 벌인 전청조 씨가 남현희 씨의 중학생 조카 A군을 골패채로 여러 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성남중앙경찰서는 30일 전청조를 아동복지법위반혐의로 형사 입건했습니다. 

 

A군의 부모는 지난 8월 전청조 씨를 3차례 신고했습니다. 폭행 진술 영상과 증거도 함께 제출했습니다. 평택경찰서, 도촌파출소, 성남중원경찰서를 갔지만, 허위신고라고 몰리면서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조카 A군은 전청조에게 폭행을 당한 뒤, 맷값이라며 고가의 명품 까르띠에 시계를 선물받았다고 합니다. 중고가 2,700만원 상당이라고 합니다. A군은 친구들에게 "조조(전청조의 별명)가 선물한 시계"라고 자랑했다고 합니다.

 

A군의 진술 (디스패치 녹취)

 

"조조가 안 때린다고 해서 갔는데, 인정사정없이 때렸어. (골프채로) 16대를 맞았어. '잘못했습니다' 그랬는데, '아 X까고 일어나' 이러는 거야. 울면서 무릎을 꿇었는데도 'X까라'고 하더라. 실핏줄 터졌잖아." (A군)

 

디스패치가 30일 보도한 A군의 녹취 내용의 일부입니다. A군은 펜싱대표 남현희의 조카이고, 현재 중학교 2학년, 14세입니다. 

 

A군은 이모의 남친에게 당한 폭행을 친구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친구가 A군의 진술을 찍었습니다. A구느이 부모는 이 사실을 알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동영상, 문자, 증언 등의 증거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미성년자 폭행 사건은 지지부진 무마됐습니다.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의 답변은 무성의했습니다. 

 

"A군 어머니가 계속 신고를 하는데 이거 허위신고 아니에요?" (도촌파출소 여경)

"그건 아버님 생각이신거죠. 더 이상 드릴 말씀 없을 것 같아서요."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

 

 

전청조가 남현희 조카 A군에게 고가의 까르띠에 시계 선물

디스패치가 보도한 전청조가 남현희 조카 A군에게 준 중고가 2700만원 상당의 까르띠에 시계, 골프를 때린 맷값으로 줬다고 한다.

 

 

 

팬더 드 까르띠에 워치 / 판매가 4천6백90만원

 

중학생 A군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계, 팬더 드 까르띠에 워치, 판매가 4천6백90만원이다. (글쓴이의 추정이며 정확한 모델이 아닐 수 있습니다) /까르띠에 홈페이지 캡쳐

 

까르띠에에 대해

 

리치몬트 그룹에 속한 프랑스의 명품 주얼리 브랜드입니다.

보석, 시계 등 귀금속을 주력 상품으로 생산하는 브랜드이며, 핸드백, 지갑이나 패션 제품도 생산을 합니다. 당시로서는 세공이 어려웠던 백금을 주얼리에 적용하는 등 보석의 역사에 있어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입니다.

매출액 기준으로 명품시계와 보석 두 분야 모두에서 선두권인 전 세계 유일한 브랜드입니다. 시계 업계에서는 순수 시계브랜드인 롤렉스, 오메가 사이에서 소위 롤오까로 불리며 Top 3에 랭크돼있고, 보석 업계에서는 반클리프 아펠, 불가리, 티파니와 함께 Top 4로 손꼽힙니다.

특히 유럽을 대표하는 주얼리 브랜드로서 미국의 티파니와 라이벌로 언급됩니다. 티파니가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해 50만원 미만대부터 억대까지의 폭넓은 가격대의 제품을 판매하며, 예쁘고 발랄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인 반면에, 까르띠에는 가격이 조금 더 비싸 살짝 더 높은 나이대를 타겟으로 하여, 우아하고 클래식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까르띠에의 역사

 

까르띠에 설립자인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화약동 제조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손기술이 좋았던 그는 1847년 아돌프 피카드의 보석세공 견습사로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몽고트로이가 31번지의 보석 작업장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까르띠에 최초의 시작. 견습일을 하던 중에 그의 사장 아돌프가 갑작스럽게 죽자 견습생이였던 그는 자기의 스승의 회사를 인수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메종 까르띠에’로 이름을 변경합니다

까르띠에가 설립된 곳인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 이후로 사회가 안정되고 파리 곳곳에서 호화스러운 파티와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호화로운 파티에 참석하는 귀족들의 치장을 위해 쥬얼리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까르띠에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날히 발전해가는 도중 프랑스 황제의 사촌이던 마틸드 공주가 까르띠에를 방문했고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공주의 입소문으로 입소문을 타게 되어 인지도가 큰 지금의 까르띠에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마틸드 공주의 후원으로 당시 파리 상류층의 중심부 이탈리아 대로로 사업장을 옮겼습니다.

1874년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는 아들 알프레드에게 일을 가르치며 대를 잇게 합니다. 그리고 또 한 세대가 지난 1898년 알프레드는 자신의 첫 번째 아들인 루이와 함께 회사를 경영한다. 1899년 까르띠에는 현재로 치면 서울의 청담동 명품 거리와 같은 명품 거리 뤼 드라 빼 13번지에도 사업장을 열었고, 세 형제 중 사업 능력이 가장 뛰어났던 첫째 루이가 뤼 드라 빼 매장을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알프레드는 자신의 세 아들들에게 회사를 맡기며 세계적인 회사로의 도약을 준비합니다.

 

1902년에는 뉴욕과 런던에도 지점을 열게 되었습니다. 두 줄로 된 흑진주 목걸이와의 교환으로 얻은 뉴욕 5번가의 모트 플랜트 빌딩은 훗날 까르띠에 인터내셔널사의 본부가 됩니다. 이미 이시기에 까르띠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왕자가 "보석상의 왕이요, 왕의 보석상"이라고 칭송한 것은 유명한 일화. 왕위 대관식에서 쓰일 왕관 제작도 맡았습니다. 왕관을 만든다는 것은 최고의 보석사로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1904년 에드워드 7세는 영국 왕실의 공식적인 보석상으로 인정했습니다. 이와 같은 유명세와 인정은 스페인, 포르투갈, 루마니아, 이집트 왕실, 올리언즈 일가, 모나코 왕국, 알바니아 왕실까지 이어졌습니다.

루이를 비롯한 세 아들들은 최고의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아름다운 보석을 찾아 세계 곳곳을 다녔습니다. 러시아, 페르시아 지역, 인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아름다운 보석은 곧 까르띠에 상품이 되었고, 당시 제작된 쥬얼리 중 몇몇은 오늘날까지도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남았습니다.

남다른 감각을 자랑하던 루이 까르띠에는 수 많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이전까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백금을 이용한 디자인으로 보석계에 혁신을 가져왔고, 보석상으로 시작했지만 손목시계 제작으로도 매우 유명합다.

 

1904년, 친구인 산토스 뒤몽에게 선물하기 위해 2년간에 걸쳐 디자인한 산토스 시계는 시계 제조의 현대적인 디자인의 손목시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까르띠에가 시계로도 알아주게 만든 장본인. 1917년 최초로 만들어진 탱크 워치는 매우 유명한 디자인이며, 미스터리 클락, 폴딩 버클 등의 특허 상품도 대표작입니다.

 

[갤러리] - 역대급 골반과 하얀 피부의 여신들 시리즈1

 

역대급 골반과 하얀 피부의 여신들 시리즈1

출처 - 디시인사이드 베스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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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패치가 공개한 녹취록

남현희의 중학생 조카를 폭행한 전청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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